2016년 3월 13일 이사야 30:26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실 때
저는 굉장히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약점이라는 아킬레스가 끊어진 뒤에 이것을 이어서 다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약점을 이긴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더위지기 시작하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운동을 조금씩 하는데 늘 고민이 됩니다. 반바지를 입으면 제 깊은 상처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평소는 괜찮은데 헬스클럽을 다시 다니기 시작을 했는데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가리고 긴 옷을 입고 운동을 했는데 몸이 무겁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운동복을 반바지로 입고, 조심스럽게 상처를 보여 주면서 운동을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면 어쩔까라는 생각으로 찜찜했는데 지금은 누구도 묻지 않고, 그러려니 합니다. 물론 속으로는 뭐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인도 친구들 근육남들이 헬스클럽에 가면 근육 자랑을 하고, 힘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근육 자랑은 못하지만 제가 어떤 때는 제 깊은 상처를 의도적으로 살짝 보여 주면, 조용히 비켜 줍니다. 왜 그런지 나중에 물어봐야겠지만, 아마도 깊은 상처 자국이 있기에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스리랑카에서 부부세미나를 하는데 재미있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동물농장” 이라는 프로그램인데, 한 삽살개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 가족은 6개월 된 삽살개를 분양을 받아서 집 옥상에 집을 지어주고 이 삽살개를 기르는데, 삽살개가 좀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가면 무조건 개 집안에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1년 반을 이렇게 이상 행동을 하니까 주인 가족들이 너무 속상했습니다. 몰래 CCTV 로 촬영을 했는데, 사람이 없을 때는 개집 밖으로 나와서 잘 다닙니다. 억지로 끌고 나와서 산책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움직이지 않고 자꾸 자기 집안으로만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삽살개의 이야기를 적어서 동물농장 제작진에 보냈는데, 제작진에서는 동물치료전문가를 불러서 개의 상태를 관찰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동물전문 치료사가 이 삽살개가 이 집에 오기전에 상태를 묻습니다. 이 집에 분양되기 전에 6개월이 어떻했는지를 묻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이 삽살개를 분양한 곳을 찾았습니다. 알고보니 한 동물 실험 연구소였습니다. 이곳에서 이 삽살개가 지난 6개월 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추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태어나자마자 이곳으로 보내져서, 모유를 먹지 못하고, 분유를 먹고, 사랑이 없는 실험실 연구원에 의해서 매일 홍체 검사를 하고, 세포검사를 하고, 주사를 맞는 일을 6개월간 계속해서 반복을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물 치료사는 이 삽살개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의무적으로 대하면 실험실 연구원으로부터 받은 여러 신체검사들이 몸에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작용이 되어서 이 삽살개는 그래서 사람을 두려워하고 개 집 안에만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물 치료사는 이 사실을 기초로 하여 이 삽살개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갑니다. 한참 동안 오래 있기, 사람이 접촉하는 거리를 줄이기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시작을 했는데 놀랍게도 이 삽살개가 지금은 자유롭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밖에 외출도 잘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관찰된 것은 바로 트라우마라는 것입니다.
트라우마(trauma)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하며, 보통 후자의 경우에 한정되는 용례가 많다고 합니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극히 많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장기 기억되는데, 트라우마의 예로는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불안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삽살개가 실험실에서 6개월간 지내고 건강한 가정에, 사랑을 많이 주는 가정에 입양이 되었어도, 어릴 적에 경험한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행복한 외부적 환경이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 대한 상처를 분명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들이나, 심각한 충격이나, 자기도 모르게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받게 된 상처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그것이 트라우마로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트라우마가 신체적인 특징으로 작용이 되기도 합니다. 남과 다른 신체적 이유로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열등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나 직장이 트라우마로 작용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외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람의 경우에는 이러한 부분이 더욱 심각합니다.
이번에 스리랑카의 부부세미나의 강사목사님은 이 영상을 보여 주면서, 부부 사이에도 꼭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하시면서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새롭게 출발을 했지만, 부부 이전에 가진 어떤 트라우마를 부부가 나누거나 공유하지 못하게 되면, 건강한 부부가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 가운데 하나는 부부가 만나면 가급적 많은 시간을 서로의 결혼 전 어릴 적 이야기를 좀 많이 나누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쌓여지고 축적된 지금의 현재의 모습이 나기 때문에 이것을 나누는 것을 통해 서로를 많이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나누지 않고, 자신만의 문제로 가지고 감추고 살아간다면 이것은 나중에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제 아킬레스건 수술 자국, 무려 33cm나 되는 큰 자국이지만, 감추기보다는 조금씩 노출을 하니까, 처음에는 좀 창피했는데 이제는 별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남들은 좀 부담스러워하겠지만....
사람들은 상처를 공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 받지 않으면, 그것이 안에서 곪습니다. 이것이 썩게 되고 썩게 된 그것은 치명적인 상처가 됩니다. 그로인해 자기도 모르는 상황에서 큰 병을 얻게 됩니다.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가 뭐라고 얘기만 하면 무조건 "네" 라고 대답하며 따르거나,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려 하는 아이들...., 아이의 착함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어하며, 누군가의 의견에만 적극 동조하며 순순히 응하는 그런 모습을 아이가 계속 보여준다면 착한아이 증후군을 한번쯤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착한아이 증후군은 ‘착하지 않으면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아이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꾹 억누른 채 좋은 모습만 보여주게끔 되고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됨으로 항상 내면은 위축되어 있고 우울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억지로 착한 행동만을 반복할 경우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데, 청소년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게 되며, 착한 모습 안에 감춰진 우울한 감정이 더 커짐으로서 심각한 우울증을 겪게 될 수 도 있습니다.
여기서도 공통적으로 되어지는 이야기는 ‘우리의 상처를 감추거나, 누르거나, 숨기거나, 나만의 저장 창고에 넣어 놓게 되면 위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이 상처를 건강하게 쏟아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즘 제가 보는 책 가운데 “4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라는 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0대에는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하고, 30대에는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하고, 40대 부터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40대에 가져야 되는 건강에 대한 자세로 두 가지를 이야기 했는데,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몸을 만든다”와 “감기에 걸려도 쉽게 낫는 몸을 만든다.” 라는 두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40대가 되면 전자보다는 후자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상처하면 또 분명하게 떠오르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 이십니다. 특별히 이 사순절에 우리가 떠올리는 예수님은 상처투성이의 모습입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라는 영화에서 재현한 그 온몸이 터지고, 찢긴 그 상처 받으신 예수님, 그리고 두 손과 발에 큰 대못이 박히면서 깊은 상처를 입으신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지만, 눈으로 보이는 예수님께서는 외상인 육체적인 상처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경험된 인간으로 인한 상처가 더 깊으셨습니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외쳤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돌변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모습들, 병 고침을 받고 그렇게 좋아했지만, 예수님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는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잡혀오게 되고, 정말 아낀다고 생각했던 제자들도 모두다 외면을 하고 도망쳤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로인해 오신 마음의 깊은 상처는 경험해 보지 않은 우리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그 상처의 깊이는 얼마나 깊을까? 감히 우리가 예수님의 그 상처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게 됩니다.
특별히 사순절 기간인 지금, 예수님의 상처와 오늘 초반에 말씀 드린 트라우마, 그리고 우리의 상처에 대한 부분을 묵상하다가 아주 귀중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면서 엄청나게 깊은 상처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깊은 상처 난 몸을 감쳐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졌습니다. 하나 두 개의 상처가 아닌 엄청난 상처들이 있는 몸을 보여 졌습니다.
제가 깊은 상처 자국을 하나 가지고 난 뒤에 가끔 몸에 상처 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지난번에도 인도 여자분 팔 뒤로 깊게 난 10cm 정도의 상처를 보았습니다. 저 부위는 쉽게 상처 자국이 날 부위가 아닌데, 어떻게 하다가 상처가 났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낫기까지 오래 걸렸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잘 모르는 인도 분이지만, 왠지 동질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을 보여 주시고, 그리고 영생하신다고 하시고, 그냥 깨끗한 몸으로, 인간의 고생을 경험하지 않고 가셨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고생을 안 하셔서 우리의 고난을 잘 몰라....”
그런데 예수님이 입은 그 많은 상처들을 기억할 때마다, 원래 그 상처들은 예수님의 잘못된 것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입은 상처이기에, 그 모든 예수님의 상처는 원래 우리의 것이어야 하는데, 나를 위해 대신 받으신 그 상처를 생각하며, 우리 예수님의 고난의 깊이를 알고, ‘우리의 고난을 충분히 아신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받지만,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 정말 이것은 고난도 아니라고 위로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될 부분은 예수님은 마음과 몸에 깊은 상처를 경험하셨지만, 다시 회복이 되셨고,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깊이 살펴보아야 할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회복할 수 없는 상태의 상처이지만, 예수님은 그 상처를 입고 죽는 것이 아닌 회복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상처 받은 몸도 보여 주셨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라 상처에서 치유되는 모습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깊은 상처일지라도 예수님은 그 상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시고, 극복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겪는 그 어떠한 상처도 우리 주님은 회복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이것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오래전에 경험했던 일이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상처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으로 여러차례, 아주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30장은 이스라엘이 지은 죄로 전쟁을 통해 망하게 될 것이지만,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내용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번 말씀하셨는데도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이사야 30:26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그리고 공동체, 심지어는 국가 전체를 치유하시는 분이시라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보여 주시는 것은 우리의 상처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아시고, 그 상처들을 그냥 보고만 계시고, 공감만 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그 상처를 분명하게 싸매시고, 고치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경험한 사람은 그 상처가 낫는 기쁨을 알게 됩니다. 저도 수술을 하고 부은 발, 통증이 있어서 움직이지도 못했었습니다. 전신마취를 하고 일어나는데에는 정말 그렇게 많이 아픈지 전에는 몰랐었습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것도 너무 어려웠었습니다. 휠체어 운전도 쉽게 되는게 아니였습니다. 그냥 다 쉽게 하는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니 몸이 조금씩 좋아집니다. 이주 정도가 될 때 수술 부위의 실밥을 뽑는다고 할 때, 얼마나 설레였는지 모릅니다. 한 달 정도가 되어서야 수술 부위를 씻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목발도 그냥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많이 걷기가 정말 어렵고, 어깨와 팔 근육이 얼마나 무리가 오는지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나아지기 시작하니까요...깁스를 하고 풀렀을 때의 기쁨, 휄체어를 졸업하고, 목발을 졸업하고, 보조기를 졸업할 때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상처를 경험한 사람은 그 상처를 치유 받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크고, 상처 전으로 다시 회복이 되어 정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게 됩니다.
오늘 이사야 30:26에는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라고 했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상처를 고치시는 그 날의 기쁨을 우리의 삶 가운데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 가지 상처를 경험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를 입으셨던 예수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싸매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시고, 그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때의 기쁨을 반드시 기억하시면서 우리 주님의 회복의 때를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도 여러분의 깊은 상처, 트라우마,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여러분의 상처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여러분이 그 상처들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오셔야 합니다. 상담자들이나, 심리학자들도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상처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노출을 하고, 이야기하고 말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창피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상처에 대한 재미있는 현상이 있는데요...이 상처를 남들이 발견하고, 노출 시키면 상처는 더 깊어집니다. 그렇다고 그 상처를 꽁꽁 감추면 안에서 더 썪어버립니다. 그런데 이 상처를 자신이 공개하고, 이야기하고, 노출하고, 용기를 내어 드러내면 상처는 이상하게도 치유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상처에 대한 특별한 치료의 방법을 가지고 계시는데요...
우리가 상처를 받은 곳에, 가장 필요한 치료의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놀랍게도 주님은 가정을 통한 치료의 방법을 예비해 주십니다. 공동체를 통해 상처를 받았다면 공동체를 통해 상처를 치료하시는 방법을 보여 주십니다. 상처와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치료를 하시지 않으십니다.
이 말을 바꾸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나, 환경이, 나에게 가장 분명한 치료의 도구로 쓰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간혹 상대방들은 전혀 이것을 모를 때도 있습니다. 나의 돈을 떼먹고 도망가서 아무 죄책감도 없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당한 고통으로 인해 깊은 시름에 잠겼지만, 그 일로 인해 나 자신에 이 부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주님이 치료하실 때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상처의 치료 과정 중에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보다는 그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깊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기에 그를 미워하는 것이 맞으나, 하나님이 상처 치유 속에 주신 사랑을 경험하고, 오히려 그러한 상처를 준 사람 때문에 자신이 더욱 깊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감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상처가 시작된 순간부터, 하나님의 상처 치유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상처가 시작된 곳에서부터 상처 치유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
시편 23:2,3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마태복음 11:28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상처 치유의 최고 전문가이십니다.
우리의 상처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아시고, 이미 받은 그 상처의 치유 방법도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상처를 혼자만 가지고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다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오셔서 다 이야기하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그 상처를 그대로 보여 주세요...상처를 예쁘게 보일 필요 없습니다. 상처는 상처난 모습 그대로 보여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존심, 학력, 재력, 권력, 여러분이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여러분의 상처를 감추어서, 아름답게 미화시키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이 정확하게 치료를 시작하십니다.
가정에서는 가정에서 받은 상처로, 직장에서는 직장에서 받은 상처로, 인도이니까 인도에서 받은 상처도 많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선교사님들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후원교회에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간혹 교회에서도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가 시작된 곳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상처 치유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 상처가 무섭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생이 되면,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감기를 걸리지 않는 몸보다는 감기에 걸려도 빨리 낫는 몸을 만드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은 우리에게 수 많은 상처를 입힙니다. 상처 받을까봐 그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상처를 받아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상처를 고치시고 싸매어 주시는 주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상처보다 깊게 상처를 받으셨고, 그 상처를 치유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 계시기에, 우리가 우리의 상처를 주님께 보이면 주님께서 반드시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그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경험해보니, 상처 자국 하나 있다고 제 인생이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그 상처를 통해 더 깊은 연륜이 쌓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부활하신 후에 도마에게 오셨을 때 허리의 창자국, 손에 못 자국을 분명하게 다시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상처자국은 의심 많던 도마를 움직였습니다. 십자가의 상처가 아닌 부활의 몸으로 보여 준 이전의 상처 자국은 오히려 주님께 더욱 나가게 하는 확신의 도구가 되어집니다. 여러분 그 도마가 예수님의 그 상처 자국을 보고, 변화되어 여기 인도까지 와서 복음을 전한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 혹시 남아 있을 상처 자국이 있을지라도, 그거 감추고 사는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그 상처 자국이 하나님의 치유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영광의 상처로 우리 인생에 사용이 될 수 있습니다. 상처자국이 부끄럽다고, 남들에게 노출이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 자국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나서, 나의 상처를 회복 시켜 주시고, 고쳐 주신 하나님의 은혜 자국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된 우리의 상처를 이렇게 부릅니다. “영광의 상처”....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을 치료해 주시는 그 은혜를 꼭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너무 오래 감추고 살아서 힘든 그 상처가 있고, 포기하고 굳어진 마음이 있다면, 그래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오십시오...너무나 오랫동안 굳어진 그 마음에도 주님이 은혜를 부으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번에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는 좀 특별하게 아침 금식을 하면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너무 힘이 들면 아침 드셔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 한 번쯤은 우리 마음의 굳은 마음, 상처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상처를 남겨두지 말고 주님께 가져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수 많은 상처들을 무서워하지 말고, 우리를 그 어떠한 상처에서도 치유해 주시는 주님을 이번에 한 번 제대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수술을 받으려면 금식을 하고, 치료의 시간을 떼어 놓아야 치료가 됩니다.
우리 이번에 한 번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가진 상처들, 아픔들, 우리 가족, 우리 회사,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한 번 이번에 시간을 떼어 놓고, 금식을 하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서 같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혼자하면, 지칩니다.
함께 할 때 덜 지칩니다.
주님이 온전히 싸매시고,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사순절 기간, 주님의 특별 치료를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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