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3일 시 31:19 하나님의 은혜, 만남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지난 1월1일 송구영신 예배 시간, 첫 말씀으로 2016년에의 우리의 영적인 키워드로 “은혜”를 말씀 드렸습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그리고 우리의 삶은 은혜 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기 위한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편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목동으로 평범하던 다윗의 인생에 어느 날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전쟁을 하게 되고, 상대방에 골리앗이란 무시무시한 장수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맞서려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그리고 계속적인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하게 되고, 그의 인기는 떨어질 줄 모르고 높아집니다. 그런데 그 높아짐이 당시의 왕이였던 사울 왕을 넘어섰습니다. 그로인해 왕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모든 백성에게 절대적인 힘을 보여 주어야 했던 사울은 이제 다윗이 너무도 보기 싫었습니다.
아니 이제는 자기 왕위를 넘보고, 사울의 가족까지도 위험을 줄 수 있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시죠? 왕에게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다윗은 그로부터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피난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어디를 가서 정착할 수 없습니다. 잡혀서 돈 몇 푼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놓였습니다. 도망자로서의 삶은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에 그 정보가 퍼져서 모든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니 순간순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절하겠습니까? 매일 매일을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야 할 상황이 생길 때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시편 기자인 다윗의 삶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잘 반영해 줍니다.
시편 31:11-13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것이 다윗만의 고백이겠습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겪어야 하는 우리의 인생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측하기 어렵고, 안전이나 미래가 보장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보장이 된 줄 알고 가까스로 거기에 다다르면 그 다음부터가 더 어렵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보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간구해도 답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자주 겪게 되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시점에서 오늘 시편 31편은 우리가 어떠한 삶의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입니다.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은혜 주셨던 하나님을 신뢰하고, 전적으로 그 분께 은혜를 구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 31:19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라는 표현은 이미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가까스로 즉석에서 준비해서 겨우 겨우 은혜를 공급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하게 쌓여진 것을 주신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은혜의 속성은 “풍성하다” 라는 사실을 많이 들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받고 또 받아도 새롭게, 정말 끝이 없이,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이 주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표현은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동일하게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그 쌓아두신 은혜를 부족함이 없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거부하거나, 많이 주시려고 하는데 우리가 준비가 안되어서 딸랑 하나만 은혜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오늘 시편의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의 은혜가 바닷물과 같다고 합니다. 퍼도 퍼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인생이, 특별히 2016년이 퍼도 퍼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히 경험하게 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하나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할 때 시편기자는 시편 31:19 후반부에서“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앞에 필요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을 한 다윗은 어릴적 목동으로 지내면서 맹수들로부터 자신의 양들을 지킬 때, 골리앗에서 자신을 지켜 주실 때, 사울의 박해 속에서 자신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나중에 왕이 되어지고, 노년이 되었을 때에도 다윗은 분명하게 자신의 인생의 때에서 자신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순간 순간에도 함께 하셔서 우리 인생을 도우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경험합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청소년 시기에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여 주십니다. 청년의 때에는 청년의 때에 필요한 은혜를, 직장을 구할 때, 결혼을 할 때, 자녀를 기를 때, 우리의 노년의 순간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얼마나 복되고, 기쁜 소식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에서 어떻게 하면 뭔가를 얻어가려고, 아니면 빼앗아 가려고, 애를 쓰는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너무나도 많이 원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고민하는 그 무언가의 문제는 그것이 여러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고민하는 그 문제를 하나님도 같이 고민하십니다.
진로를 준비하는 분들의 그 고민하는 진로도 우리 하나님은 같이 고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고민하는 문제를 푸시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을 우리의 인생에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순종하고 따를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사무엘상 30장에는 다윗이 나중에 겪은 큰 고난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울 왕을 피해 망명생활을 하는 다윗 주변에는 다윗을 신뢰하고 따르던 추종자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때도 한참 전쟁의 위기가 오고가던 시기라 매우 긴장된 상태였습니다. 다윗과 그를 따르던 부하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시 상황을 살피느라 이리저리 움직여야 되는 상황이고, 이로 인해 가족들은 시글락이라는 곳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이때 아말렉 지역의 사람들이 침략을 해서 다윗과 부하들이 없이 남아있던 모든 사람과 다윗의 가족을 몽땅 포로로 데리고 간 사건이 나타납니다.
삼상 30:1-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라고 합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었는지 사무엘상 30:4에는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라고 기록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다른 백성들도 가족들이 다 포로가 되어서 생사의 기로에 놓이니까 모두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책임전가를 위해서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얼마나 급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삼상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라고 합니다. 다윗자신이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어려움을 주는 사울 때문에 도망자로 살아야하고, 그나마 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그냥 욕심없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가족들을 모두 잡아간 상황을 그의 인생에 맞이했을 때 이보다 더 비참한 시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별 볼일 없는 망명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마저도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때, 그는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지금 당장에 없어진 가족들과, 여러 상황들, 오죽하면 “다윗이 울 기력이 없었다”라고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런데 사무엘상 30장 6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기록이 됩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은 다윗 앞에 쌓아두신 은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서 베푸신 은혜”가 임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그 위급하고, 다급한 순간에도 분명하게 경험합니다. 위기가 올수록, 어려움이 올수록 더욱 깊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어집니다. 사무엘상 30장은 나중에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아말렉을 모두 무찌르고, 그의 백성과 가족을 다시 찾아오는 내용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적용) 오늘 여러분의 인생에도 주님은 분명하게 여러분을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 쌓아두신 은혜와 여호와께 피하는 자를 위해 인생 앞에 베푸실 은혜를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이것이 2016년 첫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분명하게 확인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며 붙잡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그 은혜는 이처럼 분명하게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 오늘 이 은혜를 깊이 경험한 시편기자인 다윗은 무슨 말을 우리에게 덧붙이고 있을까요?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시편 31편 23을 보면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삶을 우리의 인생에게 이어주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것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자기 스스로,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산다”고 교만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엄중하게 갚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송구영신예배에서 전한 바울사도의 메시지와 같은 맥락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받은 자의 삶이 은혜 받은 자답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윗도 이것을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진실하게 사는 삶이, 은혜 받을 자의 삶의 모습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자신의 성공 스토리의 일부로 정당화해서, 과정으로 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의 삶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다고 하시는 분들 가운데, 곧 은혜를 다 까먹는 행동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거친 말투, 매너 없는 태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간주의적 사고, 하나님을 믿지만 삶은 반대방향으로 행동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너무 쉽게 뒤집혀서 언제 은혜를 받았는지를 생각할 여지도 없이 은혜를 까먹는 삶의 모습이 우리에게 많이 나타나면 안됩니다.
이야기하는 신앙의 이야기는 은혜를 정말 많이 받았는데, 하는 행동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과 다르거나 삶과 일치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예) 지난번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아마도 교회 선교팀이 비행기를 탄 것 같았습니다. 사역지에서 약간 경직이 되어 있었는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풀어진 모습은 너무 거슬렸습니다. 비행기 안의 매너는 완전히 무시를 하고, 들떠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얼굴이 창피해서 아주 혼났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이나, 가지 말아야 할 곳들에 가 있으면 그것도 역시 은혜를 까먹는 행동이 됩니다. 그러기에 시편기자인 다윗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그의 풍성한 은혜를 채워가시고, 이어가신다고 성경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이 은혜의 삶을 위한 합당한 자세와 태도를 위해서도 우리가 힘 써야 합니다. 은혜는 받았는데, 삶에는 은혜 받은 자의 삶의 모습이 없다면 우리의 은혜는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간혹 본인도 은혜를 까먹는 행동이 무엇인지 자신도 잘 압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시나보다. 옛날에 은혜를 받았는데, 이렇게 은혜를 까먹고 망가져도, 계속 은혜를 주시네...뭐야 이거. 괜찮은데...주일날 회개 기도하면, 계속 은혜 주시니까, 하고 싶은 거는, 하고 싶은데로 하고, 용서만 구하면, 은혜는 계속 오겠네....” 이런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바보라서, 그냥 무한 리필하듯이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것이고, 한 번 더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은혜가 따라다닌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것과 분명하게 다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계속 은혜를 남겨 두시는 것은,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기에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지 않도록 늘 힘써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가장 큰 은혜는 우리 같이 부족하고, 모가 난 사람들을 위해서, 죄로 인해 멸망에 빠질, 영생에 대한 소망이 없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와 같은 삶을 사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에 하심으로 우리가 받을 형벌을 피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은혜입니다.
이 가장 큰 은혜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우리가 가장 은혜를 많이 받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2016년의 교회 표어를 “하나님의 은혜, 만남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라고 정했습니다. 지난 성탄절 전 대강절 기간에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가 인도에서 살면서,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예수님처럼 사람 가리지 말고 만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예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해야할 일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받고, 가만히 있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자기만 은혜를 먹는 것은 영적인 이기주의입니다.
아직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다가가서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쫓아 이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낮설고, 문화가 다른 인도라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초기에 어느 정도 정착을 하면,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고,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고 싶어 하십니다. 만약 그랬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전도하는 명령도 주시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 곁에만 가까이 하고 시중을 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참으로 많은 곳을 다니시며,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 만남이 그들에게 ‘은혜’가 되어지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나라를 눈 뜨게 하는 접촉점이 되어지게 됩니다.
2016년에는 그러기에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혼자서 하기는 어렵습니다. 교회를 통해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서 같이 은혜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은혜 받는 자리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자리, 봉사의 자리, 물질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 받은 자로서의 자리를 합당하게 잘 지킬 때,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서 자기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소개 하고 싶어 하셨던 하나님 나라를 이제는 은혜 받은 우리를 통해, 은혜 받은 자의 삶을 잘 감당하는 우리들을 통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하십니다.
2016년에 많은 만남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은혜 받은 충만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만남으로 2016년에 아름답고 귀하게 쓰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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