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2월 13일 마태복음 11:16-19, “예수님은 모두를 만나셨습니다.”

      날짜 : 2017. 03. 0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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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13일 마태복음 11:16-19, 예수님은 모두를 만나셨습니다.”

        사람마다 만남을 가지게 되면 첫인상이 무척 중요합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첫인상이 좋은 사람은 많은 장점으로 작용을 하게 되고, 첫인상이 좋지 않으면 감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부과 원장님이신 집사님이 계셨는데, 피부에 진짜 문제가 있어서 오는 환자는 드물고, 대부분 피부가 좋은 분들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최근 추세는 취업을 준비하는 남자 분들도 많이 피부과에 와서 얼굴을 관리한다고 합니다.

        한국을 다녀보면, 남자 화장품 가게들이 많습니다. 최근 트렌드는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지, 옛날에는 젊은이들 옷 가게나, 여성옷 가게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40, 50대 남자를 향한 세련된 옷가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말 하는 것이나, 태도는 분명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인데, 나이에 맞지 않게 아주 예쁜 옷들을 입고 다니시는 40-50대 남자 분들이 많아 졌습니다.

        한국인에 옷에 대한 세계 사람들의 웃지 못하는 패션 흐름 가운데 하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기능성 등산복 케쥬얼입니다. 공항이나, 호텔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는 이 한국인의 특유한 패션과 등산복 시장이 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신기해 보였나 봅니다. 실제로 어느 선교사님이 잠시 한국에 가서 도봉산을 올라갔다 왔는데, 반바지에 평범한 운동화 신은 사람은 자기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많은 기업 CEO들을 연구해 보면, CEO들의 소비 트렌드를 가운데 주목할 부분이 있는데, 많은 리더들이 많은 모임에 참석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에,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얼굴이야, 쉽게 고치지 못하니까, 두 번째 변화를 줄 수 있는 수단인 의상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 모임이나 만나는 상대방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을 상당히 중시를 합니다. 옷으로 줄 수 있는 첫 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옛날 어른들의 말에도 먹는 것을 자신을 위해서 먹고, 옷은 남을 위해서 입으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하던 첫 인상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면서 가졌던 생각을 마태복음 11:19에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은 유대인들로 이들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11:18을 보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3:3을 보면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라고 합니다. 세상을 등지고, 광야에서 살면서, 세례요한은 보통 사람들이 입는 옷과는 다른 옷, 제한된 음식을 먹으며 광야에서 수도원처럼 사는 세례 요한을 당시의 유대인들은 제대로 먹지도 않고, 제대로 된 옷을 입지 않고 산다고 하면서, ‘귀신에 들렸다,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반면 그러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는 다르게 이야기를 합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 다니시는 행적을 보니,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어부도 만나고, 병든 자들도 만나고, 귀신 들린 자도 만나고, 간음한 여인도 만나고, 남편이 다섯이였던 사람도 만나고, 심지어는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강탈하다시피해서 로마에게 바치는 세리도 만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말씀을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따르면서 율법에 치우쳤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이 말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 형식적인 것에만 치우쳤습니다. 내면에서의 참된 하나님을 향한 거룩은 없고, 소위 거룩한 척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눈에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들만의 잘못된 가치관이 생겨버려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볼 때 그들은 먼저 판단부터 하고 사람들 만납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볼 때에는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병이 들면 다 죄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병자들을 찾아가서 만나서 고쳐 주셨습니다.

        단일민족이던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혈통을 유지하는 것, 가문을 중시 여겼는데,, 식민지 정책으로 외국으로 포로로 나가거나, 외국사람, 특히 유대인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이방인들이 섞이게 됩니다. 그런 것을 싫어했는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마리아 지역 같은 곳은 아예 지나가려고도 하지 않고, 사마리아 사람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런 곳을 예수님은 돌아가지 않으시고 그곳을 직접 거쳐서 지나가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편이 다섯이나 있다고 알려지는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의 정말 파격적입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그럼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을 하셨을까요? 예수님도 사역을 위해서 데리고 다니는 제자들이라도 좀 반듯한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 좋을텐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정말 당시의 촌동네 갈릴리 출신들의 어부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인데,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나, 폼이 나게 있는 집 사람들, 배운 사람들을 좀 만나셨으면 좋았을텐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9:12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셔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중에는 당시 유대인들의 최고 지도자 그룹인 산헤드린 회원이였던 니고데모도 있었고, 우리가 잘 아는 부자 청년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리거나, 판단해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모두를 항상 만나 주십니다. 좀 가려서 말 잘하는 사람, 좀 공부한 사람들, 좀 예쁜 사람들, 좀 돈을 번 사람들과 같이 괜찮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시거나, 더 잘해주신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이 없고, 약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만나 주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은 지금도 누구든지, 모두를 만나고 싶어 하신 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누구든지, 모두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힘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하면 아무리 좋아도. 시간이 지나거나 상황이 바뀌면 불편한 부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부담스럽고, 싫은 사람들이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좋은 점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과 같이 판단의 기준이 있어서,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되면, 자동적으로 이 사람 판단 장치가 작동이 되면서 상대방을 가리게 됩니다.

        까다로운 사람 상대하기라는 책을 본다든지, 우리의 성격 유형이 따른 다양한 유형으로 사람을 나누는 MBTI, 아니면 혈액형에 따른 성격 유형 등의 책들을 읽으면, 정말 나하고 다른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래 살았던 부부들 이라도 다릅니다. 남편은 하얀색을 좋아하고, 국물도 하얀색 국물을 주로 먹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빨강색을 좋아하고, 국물도 아주 빨강게 하는 매운 요리를 좋아합니다. 영화를 봐도 어떤 사람은 현실에서 할 수 없었던 때리고 부수고,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냥 사람만 나와서 이야기하는 스토리 중심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운동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취미도 그렇고, 옷을 고르는 것도 그렇고 사람마다 다 다르고 취향이 틀리고 방식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나와는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도에 살면서 힘든 것은 인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우리와 다르게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에게 다르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틀렸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틀리게 행동하는 것 같으니까 우리가 화를 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별별 모습을 다 보게 됩니다. 제일 힘든 것은 헤드라이트 상향등을 켜서, 눈에 무리를 많이 주고 잘 안보입니다. 그리고 유턴이나 좌회전을 하려면, 우리는 돌려고 하는 안쪽에 가까이 붙어서 해야 하는데, 꼭 직진하려는 제 차를 막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남의 차를 가로 막고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합니다. 역주행도 많이 있고, 심지어는 고속도로에서 램프 진입을 못해서 후진 주행을 하는 차도 자주 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이 분명하게 틀렸습니다.

        () 제가 성품이 좋습니다.(.....) 제가 군대에서도 을 안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신앙적이든지, 갑작스럽게 놀라거나, 재치기를 해도, ‘, 아니면 아멘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운전을 하다보니, 드디어 저도 욕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심한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은 안하셔도 되는데, 제 자신은 많이 놀랍니다. 그런데 제가 힌디어를 배우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 힌디를 읽고 쓰는게 참 어렵습니다. 최근에 인도가 세계 랭킹 2위에 오른 항목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에서 제일 ignorant 나라 2위가 되었습니다. ignorant 라는 단어는 보통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무지한, 무식한, 무학의..”1위는 멕시코라고 합니다. 아직 배우지 못하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적다는 소리입니다. 실제로 제가 듣기에 구루가온 운전면허 시험에는 필기시험이 없다고 합니다. 차를 이동하고, 서게 하는 기능만 점검하지, 운전 예절이나 관습이나 주의사항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래 인도는 많은 기사들이 가난하고, 어려워서 차를 이동하는 것만 배웠지, 운전 예절을 못 배웠지, 그리고 표지판에 써 있는 것을 못 읽는 사람도 많아...다 이유가 있는거야,....” 라는 생각을 하니까 운전을 하는데 좀 더 여유를 가집니다.

        그리고 길도 좋지 않아서 차가 자주 고장이 납니다. 자주 차를 고치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 이상하게 차를 몰거나 좀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제 머리에서 이제 완충작용을 합니다. “그래 차가 문제가 있거나, 운전을 잘 못 배웠거나, 초보자 일거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와 다른 거지, 다 이유가 있겠지, 그 사람들이 틀린 게 아닐거야!라고 생각을 합니다.

        (적용)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우리 주변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만나게 됩니다. 최근에 페이스북이나 카톡등이 활성화 되면서, 사람들이 너무나 개인주의가 되고, 이것이 이기주의가 되면서,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남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습니다. 남에 대한 배려라는 단어가 점점 사라져 갑니다. 정도가 점점 심해집니다.

        최근에 많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1988년의 여러 상황들을 아주 잘 묘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PD가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사는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힘들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1988년은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그래도 그 때에는 이웃이 있었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위기를 이겨냈었다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지금 현재에서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살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같이 사는 것' 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드라마 시청률이 무척 높습니다. 저희 아이들과도 같이 보면서 아빠 엄마가 사는 시절의 이야기들인데, 뭐가 좀 새롭게 느껴지고 신기하니?라고 물어보면 드라마에 나오는 이웃에 사는 중고생들이 같이 놀아요? 핸드폰 스마트 폰이 없는데 같이 놀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저도 다시 되새겨보게 되었습니다. 드라마에 보면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고, 친구 집에도 자주 가서 자고, 이웃끼리 어려운 점을 같이 공유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정말 서로 다른 개성, 가정환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같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모습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나하고 맞지 않는다고, 나 하고 스타일이 다르다고...’, 서로 다른 모습에 부담을 가지고, 믿음 생활도 제대로 못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때문에 겪은 마음고생으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다가 조용히 슬며시 빠지거나, 그 사람들을 안 만나는 방향으로 틀어 버립니다. 여러분 !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가요? 여러분 자녀들에게도 이렇게 가르치실 건가요? “너 하고 다르거나, 너하고 스타일이 다르면 만나지 말고, 피해라..” 이게 과연 맞는 걸까요?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와는 분명하게 다르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알리고, 선포하기 위한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에게 필요한 사람이거나, 괜찮은 사람을 거르지는 않으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한 한가지 가치관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에게 보내는 사람이라는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17:9을 보면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생각 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대합니다. 그러니 한사람 한사람을 귀중히 여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어느 목사님이 교인들 자랑을 참 많이 했습니다. “오랫동안 목회를 해도, 골치 아프게 하는 성도가 없고, 항상 목회자를 잘 대하고, 헌금생활도 잘 하고, 교회봉사도 너무 잘해서 너무 좋다고....” 그래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그랬더니, 목사님 말씀이 좋은 교인이 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많이 하신다고 합니다.

        제가 그 이야기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저도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 가정이 왔습니다. 회사도 좋은 회사고, 부부가 영어도 잘하고, 양가 부모님이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했던 경력이 있었습니다. 헌금에 대한 신앙관도 분명해서, 정말 하나님이 좋은 교인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보내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 교회를 안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서 부인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몇 달 전에 잠시 만났었는데, 그렇게 좋아보였던 모습은 없고, 안색도 좋지 않았고, 교회를 안나 올 때는 현지인 인도 교회를 간다고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나간 것 같습니다.

        좋은 교인으로 알고 기대했다가 실망이 더 커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그때 이 후로 제가 다시 그 기도제목..“좋은 교인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 눈에 보기에 좋은 교인이 아니라, 오시는 분들 한 분 한 분을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분을 우리의 역량으로 최선을 다해서 섬기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이 기도가 맞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예수님처럼, 누구나, 모두가 다 와서 함께 믿음 생활을 해야지, 교회도 사람을 가려서 좋아하고, 받아 주면 안되는 곳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뜻을 정하고 삶을 사는 것이 맞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보기에 괜찮고, 뭐가 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가려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한 분을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만남을 주장하시기에 그 만남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셔서, 누구를 만나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2016년을 위해 기도하면서 생각하는 목회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많은 사람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도 정착 초기에 들은 말 가운데 하나가, ‘한국 사람들은 직장, 학교, 가정, 시장이나 마트, 한국식당과 같은 꼭 필요한 곳 몇 곳을 정해 놓고 거기를 자신의 섬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만, 왔다가 갔다가, 오고 가면서 살다가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교회도 그 흐름을 탈려고 합니다.

        익숙한 것이 좋으니까 익숙한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하고, 부담스럽거나, 나하고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주님이 그렇게 이 땅에서 사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하고 다른 사람들을 항상 만나러 다니셨습니다. 그 만남 가운데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이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고, 예루살렘 주민을 선동할까봐 마음을 졸이던 로마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예수님의 최측근인 제자들 가운데도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가롯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모두를 만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우리들도 사람들을 찾아서 만나는 교회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처럼 만나러 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나, 계산을 하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해 주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과의 만남 가운데, 순간순간 작은 행동과 대화와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됩니다. 그때 대충했거나, 소홀히 했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만남인데,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섬기고 대했을 때, 그 분들이 우리의 교우들이 되고, 그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저 자신과 교회에도 큰 은혜가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그러한 만남을 위해 예수님처럼, 만나러 다녀야 합니다. 인도에 오래 계신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나 오래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을 더 안 만나려는 삶의 구조로 바뀐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분들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만남을 가지고,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으신데, 여러분이 만나지 않고, 여러분이 불편하다고 만남을 피하고, 여러분들이 부담스럽다고, 피하게 된다면, 우리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한 칼럼리스트의 글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축구를 하는데, 자꾸 공이 와서 피했더니, 자기에게 공이 오지 않아서 좋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 본 감독이 그 선수를 축구팀에서 제외시켜 버렸다고합니다. 박지성 선수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축구 경기에서 되어지는 태클도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다고 합니다. 자기가 축구를 잘 하기에 상대방은 태클이라는 기술로 자기를 위협하지만, 태클도 경기의 일부이기에 받아들기고,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박지성 선수는 태클을 통한 반칙을 유도해서, 결정적인 골 찬스를 많이 잡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때로는 나에게 태클을 걸기도 합니다. 정말 쳐다보기도 싫은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된 모습을 보시고, 한탄하셨다는 장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6:6-8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만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모든 영광을 버려두시고, 마굿간에서 태어나심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기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한사람 한사람의 삶의 이야기는 정말 너무나도 귀중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통해서 그 만남을 이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우리의 만남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우리의 만남을 축복으로 만들어 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인도에 계시는 동안 이 귀하고 복된 아름다운 만남이 주안에서 이어지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번 성탄절 이웃초청 예배에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오랜만에 몇 분들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는데, 무척들 반가와 하십니다. 요즘에는 인쇄물들이 하도 영향이 없습니다. 인도 선물의 집에 가면, 예수님에 관한 성탄 카드를 팝니다. 저도 몇분에게는 이 성탄절 카드를 손글씨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면 안됩니다.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방법을 찾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 여러분의 이웃들을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 주님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귀중한 시간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 그 은혜를 갚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전체를 통해 우리의 만남을 통해 일하실 주님을 찬양하며,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만남을 주실 주님을 찬양하며, 특히 인도라는 이 귀중한 곳에서의 주님이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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