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0월 18일 베드로전서 2:11-17 믿는자의 삶과 자세

      날짜 : 2017. 03. 03  글쓴이 : 관리자

      조회수 : 934
      추천 : 0

      목록
      • 20151018일 베드로전서 2:11-17 믿는자의 삶과 자세

        우리가 베드로 전서를 읽을 때 염두해 두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자인 베드로 사도에 대한 부분입니다. 신약에서는 우리가 주로 바울사도의 서신들을 많이 읽고, 들었습니다. 로마서, 고린도 전, 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갈라디아서 ...등등, 그런 가운데 베드로 서신은 바울 사도의 서신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특색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직접 사시면서 사역을 하시는 동안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고기 잡는 배에 오르셔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오셔서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시고, 베드로에게 오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다니면서 많은 병자들을 예수님이 치유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하고, 때로는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신 예수님께 호기심이 발동해서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던 것과 같이 자신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는 엉뚱한 요청도 하지만, 요청대로 진짜 물위를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9:2-8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신 일이 기록이 됩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변형이 되어서 예수님의 옷이 광채가 나며,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는 것을 직접 봅니다. 그리고 너무 놀란 베드로는 다른 곳보다 여기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여기다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짓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납니다.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라고 합니다.

        이상을 통해 우리가 베드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베드로는 분명하게 예수님을 만났고,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을 분명하게 목격했고, 그리고 심지어는 하늘의 소리까지 분명히 들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베드로 서신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너무 너무 분명하게 예수님을 만나고,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고 접하고, 그리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체험들을 너무나도 많이 경험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그가 기록한 베드로 전,후서는

        그냥 적당하게 알게 된 깨달음으로 이야기 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누가 전해져서 알게 된 내용과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입니다.

        분명하게 보고, 경험하고, 듣고, 알게 되었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의 최대 강점입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이 강점을 가진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에 대해서 베드로 서신에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들었던 내용은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소망이 있게 하시는 분”(벧전 1:3) 이시고,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해도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칭찬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벧전 1:7)는 것과 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거룩한 행실을 지녀야 한다는 것”(벧전 1:13), 그리고 주의 사랑을 맛 본 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벧전 2:1-3), 그리고 모퉁이돌과 같은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정체성을 이야기 해 주면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이야기하고, 우리가 이렇게 왕 같은 제사장과 같이 되어지는 이유는 아름다운 빛을 아직 어두움에 있는 이들에게 전하기 위함”(벧전 2:10) 이라고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는 분명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를 믿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되어지는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삶과 자세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 이 세상에 있게 하신 곳에 존재하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 자신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 하는 예수님을 보고, 자신이 거기다가 집을 짓고, 세 분을 모시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입니까? 모세, 엘리야, 그리고 주님이 뭐가 필요해서 베드로가 지은 집에서 사셔야 합니까? 베드로가 가진 능력이 얼마나 되기에 그렇습니까? 인간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니까, 베드로도 그냥 모시고 사는 것이 최고인 줄로만 알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세상을 떠나서 주님만 모시고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삶을 따라서 함께 살고,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경험한 후,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치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나서 알게 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곳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부정하고, 더럽고, 추악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했습니다. 특별히 초대교회 당시의 세상인 로마의 식민지 통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조차 부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잔인한 이교도들이고, 타락하고,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도무지 이야기를 할 상대가 되지 않는 정말 섞이고 싶지 않은 대상이였습니다. 이런 세상은 당시의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집과 재산을 몰수하고, 심지어는 경기장에 넣어서 사자나 맹수의 밥이 되게 하는 일을 자행하는, 정말 말이 필요 없는 경멸의 대상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떠나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따르라, 세상적인 것으 모두다 버려라...” 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서신에 상당한 부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그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외입니다.

        소위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을 보여 주어야 하는지를 베드로 서신에는 상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좀 의외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베드로같이 그렇게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기적을 체험하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 들은 사람이라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예수님만 따르고 살아야지, 이 세상은 대수롭지 않으니까, 이 세상을 떠나고, 이 세상을 부정하고 살라는 내용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사는 삶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세상에 있는 조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벧전 2:13,14을 보면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핍박하던 로마 정부를 위해서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가뜩이나 로마 정부 때문에 직장도 제대로 못 얻고, 사업도 제대로 못하고, 늘 눈치 보면서 도망 다녀야 하는데 소위 예수님의 수제자라는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게 말이 됩니까? 적어도 여러분 세상의 고통을 참으십시요..곧 그들은 불이 나와서 삼켜서 다 멸망할 것입니다. 그들의 박해에도 여러분이 참으면 다 하나님 상급입니다. 그 더러운 세상을 이기십시오...” 이 정도 이야기해야 예수님 수제자인데, 한 번 박수 받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 서신에 보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에서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 합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를 이야기 합니다. 벧전 2:18에는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환은 사전적인 용어로는 관청이나 회사, 가게 따위에서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하여 고용한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로마 정부의 핍박을 피해서 일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부분이 이런 잔심부름과 같이, 불 안정적이고, 남이 시키는 일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여러분 주인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저주 한 판 세게 기도하고,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주님만을 예배하는 자리에 서서, 세상을 떠나십시오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벧전 2:19,20을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 세상의 삶의 현장에서 당하는 고통을 이기는 방법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참고, 그냥 꾹 참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선행을 하며, 그 부당하게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분명하게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장, 이 세상, 나의 자리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영역 곳곳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할지를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벧전 3:1-7에서는 아내와 남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벧전 3:8 부터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선을 행할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을 부정하고, 미워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을 행해야 하는 현장이라고 이야기를 분명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4, 5장에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벧전 4:12,13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베드로 사도들의 눈앞에 있는 성도들이 가장 절실하게 직면한 문제는 바로 고난입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이 고난을 피하거나, 뒤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반드시 겪게 되는 이 고난을 분명하고 똑똑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직면하고, 이기고 살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자세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벧전 5장에서는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에게 분명하게 권면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영적인 지도자들이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이 세상을 사는 성도들을 잘 인도하여, 그리스도인의 삶과 자세를 바르게 가지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 주고 있고, 특별히 맡겨진 양들에 대한 자세를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줍니다. 벧전 5:3을 보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젊은 자들이라고 지칭하는 무리들에게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이야기 합니다. 이 젊은 자들은 그냥 청년만이 아니라, 다음세대라고 지칭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도 베드로 사도는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벧전 5:5,6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문제들 하나, 하나만이 아니라, 세상을 사는 부부, 지도자, 그리고 젊은이들에게까지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자세를 가르칩니다.

        초반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냥 시간 되서 깨달음을 얻고 그냥 어른이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하늘의 소리를 들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정도 신앙을 경험하고, 체험했으면 그냥 자기가 체험한 사실들만 열거하고, 신비주의자처럼, 세상을 등지고, ‘영적인 것만 추구하고 살아라 라고 이야기를 해도 꽤 먹힐 여러 요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사도는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그 내용들을 보면 너무 너무 구체적입니다. 주인의 자세, 고용인의 자세, 부부의 관계, 지도자나 자도자를 따르는 이의 자세, 그리고 선을 행함과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줍니다.

        이것이 베드로 전서를 이루는 중요한 뼈대이고, 구성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는 그의 메시지를 하나님 나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때가 올 것이고, 그리고 그 후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벧후 3:10을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이야기 하고,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은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그 날을 사모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벧후 3:12,13을 보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을 사는 우리의 삶과 자세베드로전서에 주로 이야기 한 그리스도인의 삶도 있지만, 베드로 후서에서 소개한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삶을 덧붙여서 이야기를 합니다. 벧후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최종적으로 벧후 3:18절 모든 서신의 마지막에 기록을 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모든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사도 자신의 간증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나서 철부지처럼 지냈던 자신을 회상합니다.

        주님의 제자로 부르실 때,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고 답했던 베드로..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자기도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하다가 물에 빠졌던 시간들

        따로 구별시켜 주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었더니, 초막셋을 짓고, 세상과 담을 쌓고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이야기 하면서 앞,뒤 구별 못하던 베드로..

        제자들 중에서 누가 크냐라는 일로 제자들을 분열하게 하고, 다툼의 현장속에 있었던 베드로

        결국 예수님 잡혀가실 때 혈기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버리던 베드로..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앞에서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세 번이나 여자 아이 앞에서 부인하고, 아니 심지어 저주하고 맹세하며 이야기 했던 베드로...

        그런 베드로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때, 실수투성이고, 부족함 투성이고, 엉망 진창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러 주시고, 다시 만나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자신을 다시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부족한 어부 베드로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혈기만 부렸던 베드로가 베드로 전서와 후서를 기록을 하고, 맨 마지막 기록을 이렇게 남겼던 것입니다. 벧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를 몰랐던 삶에서, 베드로 자신처럼, 체험하고, 깨닫고, 경험하며 알게된 그 분의 은혜와 그에 대한 사랑과 지식을 이제 주님이 오실 날까지 자라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끝 맺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마침이 바로 그리스도께 영광을 위하여..” 라고 말을 맺습니다.

         

        이 베드로 전서, 후서는 우리에게 아주 균형 잡힌 신앙을 알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삶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를 이야기해주며, 우리의 삶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까지 연장하는 귀한 말씀의 책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두리뭉실하게 이 세상에서 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저속하니까, 거기를 떠나서, 하나님 나라만 바라고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가장 많은 영적인 체험과 경험을 한 베드로를 통해,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분명히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더 되새김질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셨던 베드로 서신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되새김질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고난의 현장에서, 선을 행하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이 말씀을 읽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새김질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 성도님들께 부탁을 드립니다.

        인도라는 우리의 삶, 오늘이라는 삶, 오늘 우리가 만난 성도들, 그리고 이웃들, 지금 내가 처한 상황, 그것이 고난이든, 어떠한 삶이든지, 매우 중요합니다. 인도를 떠난 뒤의 삶을 위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인도에서의 삶, 오늘 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현재에 충실한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한 공동체로 만나서 함께 하는 우리 교우들, 그리고 우리 가정, 우리 직장과 사업체, 그리고 인도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인도인들 모두가 정말 귀중한 나의 지금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충실하게 살라고 권면한 삶의 현장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 베드로 전, 후서의 말씀을 되새기며, 주님의 은혜와 주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인도에서 더욱 풍성하게 자라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고하기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