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축제 홀리에 대해서

      날짜 : 2014. 03. 17  글쓴이 : 관리자

      조회수 : 1803
      추천 : 0

      목록
      • 계급, , 피부색을 뒤집어 엎는 홀리 축제

         

        한국은 꽃샘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며 눈까지 내렸지만, 북인도는 이미 여름의 문턱을 넘어섰다. 4월이 낼모레이니 더운 게 당연한 때가 됐기도 했고, 힌두력으로 따져 봐도 얼마 전에 이미 홀리(Holi) 축제가 지났으니 선배들의 지혜로운 말씀에 따르자면 이제 찬물로 샤워해도 괜찮은때인 것이다.

        힌두력은 음력이다. 음력이 참으로 신통한 것이 양력으로 치면 날짜가 오락가락 하지만, 음력으로 계산한 축제일은 매년 달라지는 날씨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올 해 홀리가 예년보다 늦게 온다면 더위가 늦게 시작되고, 디왈리가 예년보다 늦다면 그 해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하는 것이 매년 영락없다. 델리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홀리를 기점으로 여름이 왔는지 아닌지를 가늠한다.

         

        남녀노소가 없는 물감놀이

        홀리가 다가오는 것은 힌두력이 표기된 달력을 찾아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맞춰 거리에 물총이나 물이 담긴 풍선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 홀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홀리 며칠 전부터 동네 꼬마들이 물장난을 하며 놀다가 홀리 전날과 당일에는 오색 현란한 가루를 준비해 서로 얼굴에 묻혀주며, 아예 물총에 물감 섞은 물을 장전해 무차별 사격을 하기도 한다.

         

        홀리가 가까워지면 시장에서, 거리에서 색색가지 가루, 물총 등속의 '홀리용품'을 판다.

        주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제일 신나게 놀긴 하지만 홀리의 물감놀이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외국인인 나도 동네를 지나가다가 꼬마들로부터 물총 사격을 받기 일쑤다. 처음에는 화를 내기도 했지만 원래 이렇게 노는 축제라니 인도에 더부살이 하고 있는 객()이 이해해야지 하고 참다가 나중에는 아예 내가 더 적극적으로 물감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원래 홀리의 유래는 절기가 바뀌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고대 힌두교 경전에 따르면 마왕 히라냐카쉬푸(Hiranyakashipu)는 브라마 신의 축복을 받아 불사에 가까운 능력을 얻게 됐는데, 그는 점점 불사의 권능을 믿고 신들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신의 대접을 받고자 했단다.

        그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딸은 홀리카라는 이름의 여자 악마였고 아들은 프랄라드(Prahlada)인데, 아버지나 누이와는 달리 비슈누 신의 절대적인 신봉자였다. 마왕 히라냐카쉬푸는 비슈누에게 헌신하는 아들을 몹시 미워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죽이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프랄라드는 비슈누의 도움으로 죽지도 다치지도 않았다.

        마침내 마왕은 아들에게 누이 홀리카의 손바닥에 불을 피워놓을 테니 그 불 위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악마 홀리카는 불에 타지 않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프랄라드만 죽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프랄라드는 마왕인 아버지의 명령에 따랐지만 비슈누 신에게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정작 프랄라드는 무사했고 홀리카는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악의 패배를 기념하기 위해 홀리 전날 밤에는 홀리카 모양으로 만든 지푸라기 인형에 불을 붙여 태우는 풍습이 만들어졌고, 홀리라는 축제 이름도 타죽은 홀리카에서 왔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색색의 물감을 뒤집어쓰고 열라노는 날이 홀리다. 홀리가 지나고 나면 거리의 개들도 분홍색으로 물든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크리슈나와 라다로맨스와 관련

        이렇게 힌두교와 연관된 각종 축제들은 권선징악의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전에 인도돋보기에서 인도의 열녀 시따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 잠시 나왔던 두세라 축제도 악마에게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는 대표적인 권선징악 축제였다.

        이외에도 홀리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판에 박힌 권선징악의 교훈보다 이 얘기가 훨씬 더 그럴듯하게 와 닿는다. 두 번째 이야기는 비슈누 신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온 인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크리슈나(Krishna)와 그의 연인 라다(Radha)와 연관된 것이다.

        원래 소치는 목동이었던 크리슈나는 어린 시절부터 유명한 장난꾸러기 악동이어서 소치기 여자들(고삐Gopi라고 한다)을 짓궂게 골려주곤 했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성장해서는 여자 소치기 중 대장이라 할 수 있는 라다와 짝이 돼 인도 고전에 등장하는 것 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랑의 전형을 보여준다.

         

        크리슈나가 아직은 어렸을 때, 하루는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물었단다.

        어머니, 라다의 피부는 희고 뽀얗던데 제 피부색은 왜 이렇게 검은가요?”

        지금도 라다와 크리슈나의 그림을 보면 라다의 피부는 백인처럼 흰색인데 크리슈나는 검푸른 색이나 보라색으로 그려져 있다.

        혹자는 이것이 크리슈나가 아리아인이 인도로 들어오기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살빛이 검은 드라비다인들의 문화에 기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라다와 크리슈나는 다문화 커플이었던 셈이다.

         

        라다와 크리슈나의 모습. 두 사람은 다문화 커플이었다.

        크리슈나의 현명한 어머니는 아들의 이 질문에 직접 대답한 것이 아니라, 아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소치는 고삐들을 불러 모아 얼굴에 색색가지 물감을 뿌리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오색 물감을 뿌려대며 신나게 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이들의 얼굴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얼룩졌고 원래의 피부색이 무엇이었는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감을 뿌리고 서로 얼굴에 색색가지 가루를 발라주며 노는 홀리의 기원이라고 한다면, 홀리는 애당초 인종적 구분을 극복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더하여 라다와 크리슈나의 직업이 소치기였다는 점에서 홀리의 주인공은 소치기 카스트가 속해있던 수드라 계층이라고도 한다.

         

        수드라는 전통적으로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평등하게 배우고 누릴 권리를 박탈당한 채 상위 세 계급을 섬기는 의무를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홀리는 1년에 하루, 수드라가 상위 계급을 섬기는 의무를 벗고 신명나게 놀 수 있는 날이었다.

        나아가 이 날만큼은 온갖 카스트 규제가 통하지 않는 날이라고도 한다. 촌락의 홀리 축제에서도 카스트 제도에서 최상위에 위치하는 브라만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모욕을 주는 것이 아예 의례로 굳어진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여성들이 긴 막대기 들고 남자들 쫓아다녀

        뒤집어지는 것은 카스트뿐이 아니다. () 구분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사리 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외출도 삼가야 했던 아낙들도 이 날은 물감으로 옷을 적셔가며 한바탕 놀 수 있었다.

        라다의 고향 마을이라는 전설이 있는 바르사나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긴 막대기를 들고 남자들을 쫓아다닌다. 이 마을의 남성들은 홀리 날만큼은 여성들의 막대기 세례를 피해 도망 다녀야 한다.

        심지어 어느 마을에서는 백년손님인 사위에게 처갓집 사람들이 침을 뱉고 당나귀에 태워 마을을 돌아다니며 창피를 주는 관습이 의례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단다.

         

        바르사나 마을의 홀리 풍경. 긴 막대기를 든 여성들 옆으로 남성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고 있다. 곧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이렇게 보면 뒤집어지게 놀고’, ‘놂으로써 뒤집는날이 홀리였던 셈이다. 평소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피부색이 흰 사람과 검은 사람이 한데 섞여 어울리고, 낮은 카스트가 높은 카스트를 웃음거리로 만들며, 여성이 남성을 때리고 남성은 여성에게 쫓겨 다니는-일들이 이때만큼은 허용됐다.

        인도판 야자타임이라고나 할까. 학창시절 간혹 해본 기억이 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반말로 평소의 원한을 풀던 그 10!

        그러나 뒤집어지는 홀리를 그저 순진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는 경고도 있다. 1년에 단 하루 동안 주어지는 해방과 자유, 권위와 제도의 파괴는 결국 권위와 제도를 굳건하게 지키기 위해 억압된 본능과 불만을 해소해 주는 배출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전통이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속시킬 수 있는 갖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배출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아량을 가졌기에 인도의 전통문화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일지 모른다.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전통. 대단하고, 또 무섭다.

        출처 이지은 (http://blog.ohmynews.com/feminif/361700)

    신고하기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